이번 <식객>을 보다보니 고재훈의 과거가 나오던데, 고재훈, 80년대 운동권 학생으로 나온다. 학교에서 학습받고, 현장으로 들어가 노조 결성하고 그러다가 재수없으면 달려가서 죽도록 쳐맞고 고문받고, 뭐 그런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 리플 가운데 허영만의 <회색도시> 얘기가 나오더라.
이현세가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그릴만큼 쇼킹한 사회참여적인 작가였던 적도 있었다. 뭐 지금은 그냥 포조리 아빠일 뿐이고 다신 <며느리..> 같은 명작은 못그릴테지만 암튼 그랬었다. 이현세와 함께 한국 만화계의 양대산맥이었던 허영만은 <오! 한강>을 통해 일제시대부터의 한국현대사를 다시 그린 적이 있었다.(물론 김세영이란 스토리 작가의 포쓰가 한몫 했지만) 그리고 <오! 한강> 2부에선 1부의 주인공 이강토의 아들이 80년대 군사정권의 지랄에 맞서는 미대생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주인공인만큼 자연히 이야기는 정권이 아닌 운동권과 재야의 손을 들어줬다. 허영만의 <벽> 역시 초반부는 주인공 신석기의 영원한 연인이 위장취업하는 운동권 대학생이라는 점을 들어 왼쪽 세상의 손을 높이 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오! 한강>과 <벽>을 읽고난 뒤 군대엘 갔다. 후반기 특기교육을 받는 동안 난 오로지 야간점호를 빠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전산특기병이라는 명목으로 행정반에서 삐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배고파서 커피프림을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옆에 있는 책꽂이에 꽂힌 허영만의 <회색도시>를 봤었다. 훈련병-이라기 보단 갓 한달도 안된 이등병 주제에 행정반에서 만화책을 읽다니 하는 호사감을 느끼며, 웬 군대에 허영만 만화? 하는 궁금증을 안고 앉은 자리에서 다 봤는데,
그랬다. 아마도 안기부가 잘나가는 만화가 몇명 데려다가 놓고선 니들 이런이런 내용의 만화 그릴래 안그릴래 이랬을 거고, 아마도 먹고살 걱정보다는 눈앞에 바로 보이는 현실적 위협 때문에 그들이 사주한 내용의 만화를 그렸을테지. 어쨌건 그 <회색도시> 보고나서 한동안 상당히 기분 더러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암튼 그랬던 그가 요새는 <타짜>와 <식객>으로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한명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때 고문하던 놈과 고문받던 사람들이 모두 국회에 모여 참 보기가 지랄스럽게 좋은 풍광을 연출해주고 있다. 그리고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인혁당 사건으로 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분들의 명예가 며칠전에야 겨우 되살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전부터 권력에 빌붙어 질질 싸던 색히들과 그 후손들은 지금 지들 지지도가 높다며 여전히 낄낄대며 깝죽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