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날림으로 작업을 했더니 시간이 남아버렸네. 허참... 살다보니 이런 일이.....
출근시간까진 아직 남았고, 그렇다고 잠자기는 애매한 시간이니, 방금 샤워하다가 생각난 옛날옛적 얘기나....
1997년 5월에 서울 강남의 그래도 제대로 된 회사에 신입딱지 달고 들어갔을 때부터 내 주 도구는 포토샵이었다. 싫긴 하지만 지금껏 주물러댄 시간을 따져보면 아마 제일 많지 않을까. 그다음은 플래시. 근데 97년 5월엔 아직 플래시가 없었다.
그때 회사에 처음 들어가서 만난 건 마눌님 포토삽 3.0과 디렉터 4.0이던가 5.0이 깔린 파워맥 6100이었다.
이른바 [피자맥]이라고도 불렸다는 납작한 이녀석.
그 당시까지 포토삽 켤 일 아니면 주로 도스에서 놀았던 내게 맥킨토시와 맥OS 신선한 충격이었지..... 플로피나 씨디도 아이콘을 갖다 버리면 쏙 튀어나왔으니 얼마나 신기해.....
암튼지간, 그때 하던 일의 순서는 이랬다.
기획이 넘어오면 대충 디자인팀에서 회의를 거쳐 작업스타일을 정하고 각자 일 배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는데,
1. 먼저 종이에 스케치를 한다. 물론 스캐너는 없었지만, 대충 스타일을 정하는 과정이니. 그렇게 스케치를 하면 그걸 스캔할 스캐너가 없기 때문에 포토삽을 켜서 마우스로 그 스케치를 보면서 그린다.-_- 나중엔 손으로 스케치하는 게 귀찮아져서 그냥 포토삽에서 마우스로 스케치를 했다. 그당시 쓰던 맥 마우스는 참 명물이었다. 지금 그 당시의 마우스 느낌을 그나마 비스무리하게 내 주는 게 로&텍의 퍼%트마우스.
2. 스케치가 끝나면 이제 애니메이션 소스의 라인을 딴다. 디렉터로 스프라이트를 얹어서 만드는 애니메이션 작업이었기에 원동화 대신 우리는 소스를 만들었는데, 대략 사람이 있으면 머리통, 몸통, 팔, 다리를 따로따로 뜯어내서 그린 다음 그걸 디렉터에서 만들 애니메이션의 구성요소로 쓰는 거였다. 연필 툴 1픽셀 또는 2픽셀을 가지고 밑 레이어에 깔아놓은 스케치에 맞춰서 쉬프트+클릭을 하면 직선으로 선이 그려졌는데, 타블렛이 없는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이 모든 팀원이 마우스로 그짓을 했었다. 아무리 데생 실력이 출중해도 무조건 마우스와 쉬프트+클릭이었다.
3. 컬러링까지 끝나면 이제 소스들을 256 컬러로 변환시켜서 비트맵으로 따로따로 잘라내 저장한다. 그렇게 뜯어내서 저장한 파일들은 2,30초짜리 애니메이션 하나당 많으면 100개까지도 갔었다. 미쳤지. 만들어진 소스들은 어쩔 수 없는 특성상 안티 알리아싱이 안먹은 상태이며 따라서 디렉터로 임포트 시켜서 배경의 하얀색을 빼버리면 대충 알파채널 먹인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흰색을 쓸일이 있으면 10% 그레이로 해야했지.
4. 이제 임포트한 각각의 소스들을 스프라이트로 해서 애니메이션을 짜맞춘다. 요새는 하도 오랫동안 안써서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해도 디렉터는 비트맵 기반이어서 자리 맞추기가 참 쉬웠다. 플래시처럼 중심점 좌표 입력하는 짓거리는 안해도 됐으니, 대충 화살표 딱딱딱 눌러보다가 대충 들어맞으면 된 거였다.
그렇게 디렉터로 만든 애니메이션이 완성되면 dir로 저장해서 프로그램팀에 넘기면 끝.
이 짓거리를 하다가 플래시란 걸 처음 봤을 땐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내가 처음 본 플래시는 2.0이었는데, 그때 그게 아마 이름 모를 조그만 회사에서 개발한 걸 매크로미디어가 사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사들인 프로그램에 플래시란 이름을 붙여서 1.0을 내놓고 이제 빽 생긴 개발자들을 휘둘러 내놓은 게 2.0이었는데, 세상에나, 안티알리아싱이 먹은 상태에서 버켓으로 컬러를 부어도 지글지글하지 않네?
당시만해도 벡터란 3디 스튜디오나 캐드 아니면 포토삽의 패쓰 따기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던 난(일러스트레이터는 처음부터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잘 못 쓴다) 플래시의 그 신기한 기능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마우스로 열라 복잡한 브러시라인을 박박 그어서 한 시간만에 뚝딱 쥐새끼 한마리가 쥐구멍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아뿔사...... 이 후져먹은 6100의 씨피유가 그 복잡한 벡터라인의 처리를 제대로 못하는 거였다. 초당 15프레임으로 그렸던 거 같은데, 돌려보니 초당 1,2프레임으로 돌아가더군.
그래서 플래시는 작업도구라기보다는 유희도구가 되어버렸었다.
웹이서 찾아낸 플래시2. 포토삽3 화면은 못찾겠네...
저 빙글빙글 돌아가는 로고, 그립다. 저 타임라인은..... 나중에 디렉터 타임라인이 저렇게 바뀌어져버려서 무진장 당황했었지. 트위닝 쓰면 열라 버벅이기만 하고.... 뭐 트위닝 버벅이는 건 플래시도 마찬가지다만.....
그리고 세월이 흘러흘러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이제는 저놈의 플래시로 밥 벌어먹고 있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것도 벌써.................. 7년....쯤 됐나???? 게다가 이제는 망할 놈의 액션 스크립트까지....... 아!!!! 쉬운 것만 하면 것도 재밌는데 망할 놈들이 자꾸만 어려운 구문을 써대!!!! 클래스니 나발이니!!!!!!!!!!
암튼지간, 그래서 결론은 이거다.
내가 왜 집에서는 아직까지 포토삽 7과 플래시 MX(버전6)를 쓰냐면,
포토삽은 짝수버전이 구리고 플래시는 홀수버전이 구리기 때문. 근데 각각 최신버전인 포토삽CS2(버전9)와 플래시8은 열라 버벅인다는 거. 그래서 포토삽CS와 플래시MX2004 대신 그 아랫버전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 전통적으로 난 포토삽 짝수버전과 플래시 홀수버전은 도저히 못써먹는다. 희안하게 업버전 됐다고 해서 구해서 써보면 일단 인터페이스부터 구려. 참 신기한 노릇인데, 아무래도 그건 내가 포토삽과 플래시를 각각 3과 2 버전으로 입문했기 때문인 거 같다.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