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런너>(미래 느와르), <토탈 리콜>(근육덩어리의 기억에 대한 고찰), <스크리머스>(알 수 없는 적에 대한 공포), <마이너리티 리포트>("제가 안 그랬는데여"), <페이첵>("내 거 내놔"), <스캐너 다클리>(원작과 영화 둘 다 못봐서 할 말 없음), 그리고 이 영화 <임포스터>("제가 안 그랬는데여"2).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1. 에스에프다.
2. 영어로 제작된 미국영화다.
3.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필립 K. 딕은 죽고나서야 그 진가를 인정받은 러브크래프트처럼(사실 경우가 좀 다르지만) 죽고나서야 헐리우드가 호시탐탐 노리는 인기작가가 되었다. 뭐 스티븐이나 마이클, 또는 강 모시기 하는 사람처럼 쓰는 족족 영화화되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지만 죽고나서라도 이런 대우 받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들은 일부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찬사를 받았고 일부는 이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개무시를 당했는데, 성공했든 망했든 거의 모든 영화들이 원작을 아주 심하게 뜯어고쳤다는 점이 또 특이하다. 특히 SF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블레이드 런너>의 경우(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꾼다>와 영화의 갭이 상당히 크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도매급으로 기억을 팝니다>를 원작으로 한 <토탈 리콜>, <두번째 변종>을 원작으로 한 <스크리머스>, 그리고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저 위의 나머지 영화들 모두 원작과 일정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건 필립 K. 딕이 작품을 쓸 때와 현재와의 시간차가 너무 큰 이유도 있겠고(그는 1928년 생으로, <블레이드 런너>가 개봉한 1982년에 죽었다) 또한 원작의 주인공들이 소위 스타들이 연기하기엔 너무나도 비리리하게 생긴 탓도 있겠지만(<도매급으로 기억을 팝니다>와 <토탈 리콜>의 주인공들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뭣보다도 헐리우드 제작자들이 그의 선구적인 SF적 관점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딕의 소설들은 아시모프의 그것들처럼 하드한 SF 영역을 다루지도 않고 신을 언급할만큼 무겁지도 않지만, 주로 다룬 소재인 기억과 변이란 요소들을 그럴싸하게 가공하는 데 있어선 아주 빼어났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만 뭔가 있어보이는 SF를 만드려는 헐리우드의 제작자들이 혹했던 건 아닐지.
그리고 사실 단편이 대부분인 그의 작품들을 장편영화로 만드려면 어느 정도 가공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또한 날로 읽기엔 그의 소설들은 (다른 SF 소설들에 비해) 재미가 없다는 점도 작용했으리라.-_-;;;;;;;;
단층촬영중.
좌우당간 상당히 오래전부터 보려고 벼르고 있던 <임포스터>를 고맙게도 티비에서 틀어주는 바람에 한 번 떠들어 보자면,(<스캐너 다클리>를 당장 개봉하라!!!!!) 이 영화는 그나마 원작에 상당히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의 딕 원작 영화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그리고 사실, 막판 대반전을 위해 그 생고생을 했는데 원작에서 이야기를 비틀어버리면 영화가 뭐가 되겠냐.....
하지만 각색 과정에서 원작팬들을 살짝 헷갈리게할 재미거리를 집어넣었는데 이게 의외로 잘 먹혀든다. 아마도 좀더 자본이 붙고 이야기를 더 다듬고 연출도 괜찮았더라면 꽤나 수작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이 임팩트는 비리리한 전개과정이 다 지나 막판반전에 가서야 슬쩍 붙는 바람에 (아마도 시나리오작가가 예상했을 지도 모를) 쇼크가 그다지 크진 않았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막판 반전 준비
영화는 그 외에는 크게 무리없이 원작을 잘 따라간다. 원작을 읽은 지 좀 돼서 (처음 읽었던 건 국딩 시절에 집에 있던 문고판을 통해서였다. 이야기의 쇼크도 쇼크려니와 삽입된 삽화가 또 그로테스크해서 꽤나 의식에 짙게 각인돼있었다. 뭐 그 문고에 실린 -대부분 SF, 판타지, 호러, 추리-소설들이 다 그랬지만) 디테일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원작에는 가장 절친한 두 사라인 아내와 친구에게 의심받는 주인공의 갈등이 상당히 잘 그려져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는 이런 주인공의 내적갈등이 좀 약화된 대신 동기부여가 좀 강화됐는데, 말했다시피 딕의 원작에 가해지곤 하는 하드한 각색들에 비하면 뭐 준수한 편이라고 본다. 그나마 게리 시니즈의 연기가 원작과 영화의 거리를 많이 좁혀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아으... 그나저나 원작이 제대로 기억나질 않는다. 오늘 집에 가서 다시 읽어봐야겠군-_-)
나날이 퇴화해가는 뇌세포의 기억능력 때문에 더이상 원작과의 비교를 하는 건 내 머리에 삽질하는 꼴이 될 거 같아 이제 고만 배우들 얘기나.
감독인 개리 플레더는 주로 티비판에서 활동한 사람인 거 같다. 막판 가면 거의 짜증날 정도로 휘둘러대는 싸구려 연출기법이 그걸 증명해주는데, 뭐 티비 시리즈에서 봐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감독이 티비판에서 놀던 가닥이 있어서인 듯.
먼저, 주인공 올햄의 절친한 친구 넬슨으로 나오는 배우는 티비 시리즈 <몽크>의 주인공이신 탐정 몽크아저씨. 어이없게도 초반에 총맞고 퇴장.
원작엔 없던 인물로, 슬럼가에서 의약품을 찾기 위해 주인공과 행동을 같이 하는 케일 역의 맥키 파이퍼는 <E.R>의 주요배역 중 하나라고 한다.(한번도 안봐서 사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짜잔. <CSI>의 멋쟁이 워릭은 올햄을 쫓는 해서웨이의 부하 버크 대위를 연기했다. 성우가 바뀌어서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저 얼굴은 구석에 쳐박혀 있어도 눈에 잘 띄드만.
주인공 올햄 역의 게리 시니즈는 우리에겐 <포레스트 검프>의 소대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왜 다리 두개 잃어버리고나서 나중에 사과관련 회사 [애플]을 차리지 않냐) 요샌 <CSI: 뉴욕>의 테일러 반장 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올햄의 아내로 나온 매들린 스토우는 <나쁜 여자들>, <12원숭이> 등에 나왔고 주연급 가운데 유일하게 티비 시리즈에 올인하지 않은 배우다.
그리고 악역이랄 수 있는 해서웨이 소령 역을 맡은 빈센트 도노프리오가 있다. 어디다가 내놔도 카리스마가 좔좔 흐르는 배운데, 여기선 게리 시니즈의 나홀로 처절의 상대를 하기엔 좀 밋밋한 부분이 많다. 영화 내내 눈에 보이는 거라곤 수염과 심하게 긴 다리 뿐. 이건 배우 낭비다.
이렇듯 꽤나 쟁쟁한 배우군을 데리고 영화를 찍었는데도 연출 때문에 영화가 거의 망했으니, 참.... 괜히 감독 중요하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밖에, 영화가 비교적 저예산임을 감안하자면 내내 보여주는 미래도시의 풍광은 그래도 제법 그럴 듯 하다. 휭휭 날아다니는 교통수단과 도시를 덮고있는 보호막의 비주얼은 헐리우드가 스스로 '썩어도 준치'라고 배내밀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저예산이지만 그래도 봐줄만한 비쥬얼.
필립 K. 딕은 그의 단편들 대부분의 배경에 전쟁을 깔아놨다. 지구인과 외계인의 전쟁, 지구인과 지구인의 전쟁 등등. 1, 2차 세계대전이 그가 감수성 예민할 시절에 일어났다는 점을 볼 때, 역시 사람은 성장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IMDB에서 골라낸 트리비아 몇가지.
*로켓이 발사되는 숏 가운데 하나는 앤드류 니콜의 <가타카>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인트로 내레이션이 흐를 때 나오는 영상들 가운데 몇몇 숏은 <스타쉽 트루퍼즈>와 마이클 베이의 <아마겟돈>에서 가져왔단다.
*총기를 제외한 모든 군사장비들도 <스타쉽 트루퍼즈>에서 갖고 왔다고. 역시 저예산 맞아.
*길거리 씬은 Cal Poly Pomona(이게 뭐지???)의 행정관 앞마당에서 찍었다고 한다. 이 장소는 <가타카>에서 쥬드 로의 아파트 건물로도 쓰였다고도 하는데, 이 길거리 씬에서 Cal Poly Pomona의 학생들(학굔갑다)과 직원들이 엑스트라로 쓰였다고 한다.
*원래 이 영화는 40분짜리 단편 세개를 묶은 3부작 가운데 하나로 기획됐었다고. 하지만 제작사가 살을 붙여서 결국 장편영화가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