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부러워. 왜인지 아니? 너는 죽음에 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죽을 수 없어. 그렇게 태어났거든. 죽음은 인간에게 살아있음을 일깨워주지.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어. 나는 죽을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죽어있는 상태인 거야."
그녀의 관심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모든 존재는 자기에게 불가능한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그리 많은 얘기를 해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죽음의 기회는 한 번밖에 없었고, 그 한 번의 기회는 유보된 상태인 이유였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더군.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요, 처음이라고."
"그 말을 한 사람은 이미 한 번 죽어봤던 사람이었나?"
"글쎄,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것까지 알 수야 없지."
나는 때로 인간이란 존재가 가지고 있는 속성에 대해 지나치리만치 환멸감을 느끼곤 한다. '모르는 것을 아는 듯'. 그것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비단 그런 이유만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너는 너 스스로 인간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어. 그것은 네가 말한 인간의 속성과 같아. 어쩜 이미 인간의 물이 들었는지도 모르지. 인간들 사이에서 오래 살다보니 말야."
"그럴지도 몰라."
그녀는 언제나 나의 주위에 머물렀다. 나는 그녀에게 말하곤 했다. "죽지 않는다는 것. 그건 죽을 운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최대의 매력이야. 물론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죽을 수 있다는 건 죽지 않을 운명을 갖고 있는 사람에겐 최대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 너는 혼자뿐이고, 나와 같은 존재들은 많아. 너의 경우는 아주 특수한 경우에 속해야만 하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굳이 나에게 말할 필요는 없어. 너가 내 옆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해."
나는 술잔을 보고 있었다. 인간만이 만들고 인간만이 소비하는 것들. 그중 술이란 것은 기묘하고도 알 수 없는 물건이었다. "왜 술을 마시지?" 그는 내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의 입으로 술을 비워낸 잔이 탁자 위에 앉는다. 그는 항상 취하도록 술을 마신다. 그가 술을 마시는 양을 지켜보기만 하는 나는 종국에 가서는 탁자 위에 어푸러진 그를 부축해 밖으로 끌고 나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깊고 어두운 밤거리를 하염없이 가야만 했다.
그녀는 인간들의 공포를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나 느끼고 있는 것을 굳이 끄집어내어 확인해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네 일상은 죽음의 은유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나를 기다리고 있어. 왜? 그럴 필요가 있을까?"
"죽음을 통제해볼 생각, 해본 적 있니?"
"난 신이라고 불리우는 존재가 아냐. 단지 인간일 뿐이지."
"왜 꼭 신이라는 매체를 언급해야 하지?"
"인간이기 때문이야."
"그래... 그럴지도..."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쥐똥이 얼룩을 남기고 간 벽지가 사방을 틀어막고 있는 곳이다. 담배연기는 무수히 많은 모양을 지어내며 사라진다. 입을 오무려 고리를 만들어낸다. 동그란 담배연기 고리가 부르르 떨며 대기 속으로 피어오른다. 나는 눈을 감는다. 혈관에 가득한 毒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지랑이같은 아득한 현기증이 밀려온다. 내 몸이 서서히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늪과 같은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든다. 꿈이 없는 잠은 죽음과 같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두운 심연의 구덩이에서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온다. 좁은 방 안에는 죽음과도 같은 공기가 무겁게 깔려있다. 나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인다.
"너 역시 죽음을 동경하지. 안그래?"
"그럴 지도."
"넌 죽을 운명임에도 죽음을 동경해. 이유야 어쨌든 나와 같군. 이유는 뭐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겠지."
"너무 어리석어."
"동감이야."
나는 그때 검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닥쳐올 죽음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당겨본다고 했다. 그들은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맨발로 난간 위에 올라가 몸을 아래로 던진다. 그리고 그 검게 굽이치는 강물 속에서 비로소 편안감을 느낀다는 거였다. 나는 웃었다. "용감하군."
"비참함이겠지." 나는 대꾸했다.
나는 신발을 벗어 난간 가에 가지런히 놨다. 그리고 맨발로 난간 위에 올라섰다. 난간 위에는 바람이 불었다. 나는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바로 내 옆에서 난간에 기댄채 다리 아래 검은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든 생각인데 말야!" 나는 큰 소리로 외쳐봤다. "조금만 더 심각하게 생각해보면 나도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아!"
그녀는 잠을 잔다. 꿈이 없는 잠은 죽음과도 같다. 그것은 그녀가 원한 일이다. 나는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가 그렇게도 원하던 죽음을 얻었다. 다행한 일이다. 이제 나는 다시 산다. 혼자서,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의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