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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바다 위에 뜬 섬] 이야기 소묘 - 2006년 03월 09일 14시 38분
2006년 03월 09일 14시 38분 2006년 03월 09일 14시 38분

때로 나는
내가 타인에 의해 인지된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못견뎌한다.

영이에게 그 얘기를 했을 때 우리는 현란한 조명이 시신경을 어지럽게 자극하는 시끄러운 락까페 안에 있었다. 분명 영이는 내 말을 못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영이는 지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영이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 애인이다. 하지만 -이 말이 맞는다면- 검증받지 않은 애인이다. 우리 둘은 그냥 서로가 서로의 애인이라고 생각하기만 하는 사이란 얘기이다. 나는 결코 영이에게 나를 강요한 적도 없고 마찬가지로 영이도 내게 자기자신을 강요한 적이 없다. 우리 둘은 언제나 단절되어있는 상태이다.

이 동네에는 언제나 안개가 짙다. 이 안개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오는데, 안개 속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보면 언젠가는 '낙원'이라고 부르는 땅에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모든 전설이 다 그렇듯이 이 동네 아무도 그 낙원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영이를 포함한 외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영이는 처음 내게서 '낙원'의 얘기를 듣고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영이가 웃은 이유는 '바보같다'는 이유였다. 영이는 지금도 그 이유로 웃기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나는 '바보같이' 그 이유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안개를 잘 보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의 끝은 아주 높다. 그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안개는 꼭 발치에 깔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종종 그 위에서 술을 먹는다. 술을 먹을 땐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을 다 먹고나면 빈병을 안개 속으로 던져버린다. 그러면 거대한 고래가 나타나 그 병을 삼켜버리고는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그것은 일종의 유희이다. 우리는 깔깔대고 웃은 다음 다시 새로운 술병을 딴다.

확신하건대, 우리는 결코 계단 꼭대기에서 안개 속에 숨어있다는 '낙원'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영이에게서도 생명을 담보로 건 맹세에서 그 확신을 얻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영이는 언제나 자신이 보고싶을 때 그 '낙원'을 볼 수 있는 일종의 자유같은 것이 있다. 그건 영이를 포함한 모든 외지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영이는 '낙원'을 본 적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영이가 내 애인이라는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충분히 즐거워해도 된다.

나는 창가에 서서 영이가 안개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을 지켜본다-...는 말은 맞지않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안개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한 일이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안개를 응시하며 담배를 피웠고 다 피운 꽁초를 안개 속으로 던졌다. 거대한 고래가 나타나 담배꽁초를 삼켜버렸다.

내 애인을 잃어버린 뒤 나는 혼자 술을 먹는다. 그것은 어쩌면 참으로 맘 편한 일이다. 나는 여전히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하루는 일부러 영이를 처음 만난 락까페에 가본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 지하 락까페를 휩쓰는 꿈을 꾸었다. 나는 온통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구토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락까페의 폐허에서 혼자 술을 먹었다. 오줌이 마려우면 셰이커에 오줌을 누었고 바텐더는 그것으로 칵테일을 만들었다. 밤이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 때 나는 락까페를 나와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집으로 갔다.

나는 혼자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의 끝, 그 꼭대기에서 나는 발치에 깔린 안개의 바다를 내려다본다. 나는 거기에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낡은 배 한척이 안개를 헤치며 멀어져가고 있다. 나는 그 배가 목적지에 닿을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때로 나는
창가에 서서 창 밖을 내다보다가 창문을 열어본다. 거기에는 안개가 있다. 이 동네에는 언제나 이렇게 안개가 짙다. 그리고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있다. 나는 이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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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11일 10시 32분
이거 꽤 오래전에 쓴 글이잖아, 별찌언니
근데 난 이게 아직까지 젤 맘에 들더라. 퍼가두 돼?
별쥐 2006년 03월 11일 17시 43분
재활용이란다.
출처만 남기렴.
raindog 2006년 03월 12일 14시 13분
나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별쥐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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