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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길] 이야기 소묘 - 2006년 03월 09일 14시 38분
2006년 03월 09일 14시 38분 2006년 03월 09일 14시 38분

눈을 뜨면 언제나 보이는 것은 회색빛이다.
그 빛깔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의 아침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아침마다 회색빛의 아침인사를 받는 것이다.
집에 내려와 첫날 밤을 자고 다음날 새벽같이 눈을 떴을 때에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여기가 좁고 침침했던 내 자취방이 아닌가 하고 혼동을 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게 버릇이 되어있긴 했지만, 부모님이 계신 이곳 '집'에서는 내가 혼잣아침을 차릴 필요도, 단촐한 밥상을 앞에 놓고 궁상맞게 꾸역꾸역 먹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냥 내 이부자리를 개켜놓고 책을 읽든지, 아니면 그냥 이부자리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가 늦은 아침까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아침밥은 엄마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려내었고, 아빠와 고등학생인 동생과 같이 마당 평상 위에서 먹어도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아침시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 아침을 가장 먼저 맞아주는 것은 예의 회색빛이다.

나는 가족생활에 빠르고 쉽게 적응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의식적이고도 집요한 훈련 덕분일지도 몰랐다.
집을 떠난 이후로, 여름과 겨울철에만, 마치 휴가 오듯 와선 시골의 정취만 맛보곤 하던 이전과는 달라야 했다.
엄마는 한사코 나를 말렸지만, 나는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느껴가며 모두들 일을 나간 뒤에는 부엌에 쳐박혀 이런 저런 음식을 만들어놓기도 했고, 나중에는 아빠와 엄마를 따라 들에 나가 피를 뽑기도 하고 낫을 들고 잘 베어지지 않는 풀들도 베었다.
처음에는 말리던 엄마도 밀짚모자 차양그늘 속으로 땀을 흘리며 웃는 나의 얼굴을 본 뒤로는 건강에 오히려 좋을 지도 모른다면서 허락을 했다.
오후의 일을 마치고 덜컹거리며 돌아오는 아빠의 트럭 짐칸에 앉아 나는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내심 나를 낙향하도록 만들어준 나의 병을 고마워하기도 했다.

농촌의 날들은 아주 더디게 가면서도 돌아보면 저만치 멀어져있곤 한다.
집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익게 되자 나는 잠시 잃어버렸던 저녁시간을 찾을 수 있었고, 그 시간에 내 주변을 좀더 차분히 돌아볼 수 있었다.
싸들고 올라온 책들을 뒤적이면서, 혹은 미니 카세트에 집어넣은 노래테이프를 돌려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시간이라는, 참으로 놀랄만큼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그것은 그것을 겪는 사람의 심리적, 육체적 상태에 의해 멋대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몇번 내 의지로 제어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영 상관없이 나는 7,8월이 인쇄된 달력을 뜯어내야 했다.
나는 뜯어낸 달력을 들여다봤다.
방학이 들어있는 그 달력 낱장에는 친구들이 다녀간 며칠이 있었다.
나는 그 며칠 동안에 있었던 별의별 일들을 떠올리며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평생 수세식 변기만 쓰다가 사람이 많아지자 할 수 없이 찡그린 얼굴을 하고 집 근처의 재래식 화장실에 갔다가 바지 자락에 누구 것인지 모를 거무칙칙한 것을 묻혀갖고 온 친구와, 장난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익사놀이, 농촌활동과 군대생활로 뼈가 굵은 선배의 환상적인 낫질솜씨, 떠나기 이틀 전 집 뒤의 공터에서 막걸리를 세 말 사다가 놓고 밤 새워 술판을 벌이다가 아빠를 억지로 모셔와 [아빠의 청춘]을 청해들으며 좋아하던 착한 이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가고 난 뒤의 밀려오던 싸늘한 공허감도.
만약에 내가 여전히 건강했다면, 건강해서 그들과 같이 왔다가 가면 되는 그런 입장이었다면, 그렇다면 그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웃음은 그 한 순간으로 접어두고 또다시 정신없는 삶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엔 없을 지도 모른다.
계속 그래왔듯이.

그래서 지금은 9월이다.

마당의 수돗가에서 낯을 씻고 고개를 들어 둘러보는 주위의 나무들은 아직 단풍물이 덜 들어있다.
나는 이미 단풍잎 하나를 눈여겨두고 있다.
그것은 아름드리 자란 나무의 저만치 위에 달려서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있지만, 여기 한참 아래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직한 잎이다.
그것이 적당히 물이 들어 바람따라 흔들려 떨어지면, 나는 그것을 주워 말끔하게 말린 다음 그 위에 시를 써둘 참이다.
몇가지 이파리를 가지고 잉크가 잘 먹는 펜도 시험해두었다.
하지만 그 단풍잎이 내가 바란 만큼 적당히 물들어 떨어질 것인지, 빠짝 말라 건드리면 파스스하고 부서져버릴 때까지 매달려 있을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아침 낯을 씻고 난 다음 고개를 들어 주위 나무들의 단풍물 든 정도를 둘러보기만 한다.
아직 단풍물은 저만치에 머물러 가까이 오질 않고 있다.
채 물이 들지 않은 이파리들이 바람에 실려 여기저기로 돌아다닌다.
나는 아침밥을 먹기 전에 그들 사이를 거닐며 집 주변을 한바퀴씩 돌곤 한다.
가까이서 올려다 보는 나무의 이파리들은 벌써 서늘해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참으로 멋있게 빛난다.
아직 이슬이 남아 축축한 낙엽들이 굴러 다니는 나무밑둥에 쪼그리고 앉아 내가 하는 것은 아직까지 내 기억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되새김이다.
생각해보면 그 기억 속에 있던 나는 참으로 숨가쁘게 살아왔다.
이미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하루의 시간대들.
그러나 나는 지금에 와서 그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음이 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를 판단할 순 없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바랬던 것은 내가 쓰는 글이 자기의 목소리를 가지고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관념 속에 있는 그것들을 현실로 끌어올리기 위해 몸을 움직여가며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배워야 했고, 그런 사고와 실천들은 나 자신이라는 개인을 전체와 하나로 뭉뚱그려 버렸다.
나는 그런 모든 일들을 스스로,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언제나 기쁨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믿고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내가 눈을 돌리는 곳에서 나를 보며 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담은 채로. 나 역시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언제까지나 내가 볼 수 있는 곳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미소를 담은 얼굴로 서있기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균열들은 어느 한 곳이 아닌 참으로 많은 곳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서도 그 균열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몰랐고, 내가 그렇게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들에 대해서도 그리 잘 알고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균열은 그렇게 작게 시작해서 크게, 작은 곳에서부터 큰 곳으로 커져나갔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 아주 잘게 부서져버리는 꿈을 꾸다가 식은땀에 온통 젖은 채로 어두운 자취방 안에 일어나 앉아있곤 하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 새벽에도 언제나 사방은 회색빛이었고, 작달막한 들창으로 부옇게 비쳐들던 새벽 햇살도 회색빛이었다. 무슨 이유일까. 그렇게 몸서리쳐지게 끔찍스러웠던 그 회색빛도 날이 가면서 점차로 익숙해졌고, 어느날 새벽에 눈을 떠 바라본 천정의 회색빛은 나에게 그래, 그렇게 여기에 있구나 정도로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어느덧 사물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게 된 나를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당연히 악몽을 떨쳐버리듯 그것을 떨쳐버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그들의 걸음걸이와 손놀림과 그들의 말투까지 변해가던 그때. 그들도 나에게서 그런 것들을 느꼈을런지도.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그때부터 혼자 우는 버릇을 들였는지도 모른다. 부여스름한 새벽여명을 받으며, 혹은 아직도 컴컴한 어둠 속을 더듬으며 개스불에 새벽라면을 끓여 불도 켜지 않은 좁은 방 안에서 혼자 라면을 먹으며, 어쩌면 나는 참으로 많이 울었던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결국 나는 그 근거를 찾지 못한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 성큼 들어오는 즈음의 들판은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들판에 나갈 때마다 그 아름다움을 의식적으로만이 아닌, 육체적으로 느끼려고 언제나 노력한다.
이제 들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는 한사코 아빠의 트럭 짐칸에 올라타 몸을 비스듬이 눕히고 밀짚모자 아래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곤 했다.
가을의 들판은 모든 아름다움이 응집된 곳이다.
파랗게 높은 하늘 아래로 낮게 웅크린 산들과 그 앞으로 펼쳐진 시원한 들판.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까지.
나는 여전히 트럭 짐칸에 올라앉은 채 눈을 찡그려가며 여기저기 풍경의 구도를 잡아보곤 한다.
그러면서 언제나 소재에 굶주려있는 그림패의 친구들을 생각한다.
아마 그들이 이 들판을 본다면, 중간중간 보기 흉하게 솟아있는 철탑들까지도 아름답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나는 그러할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동생을 매수해 나무 하나를 타도록 한다.
그애는 나무 둥치를 타고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며 자랑스럽게 몇 개의 큼직한 이파리를 내보인다.
나는 그애의 손에 있는 이파리들을 모두 얻기 위해 얼마 안되는 용돈을 고스란히 그애에게 넘겨야만 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기쁘고 그애도 나무 한 번 탄 대가로 용돈을 얻었으니 기쁘다.
나는 이파리 중에서도 물이 이쁘게 든 것들을 골라 몇겹 신문지 사이에 끼운다.
그리고 그것을 아랫목에 얌전히 두고 그 위에 잘 들춰보지 않는 두터운 사전을 올려놓는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그 이파리들은 알맞게 말라 훌륭한 종이대용이 될 것이다.

콘크리트 포장된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아빠의 트럭 짐칸에 비스듬히 누워 얼굴에 덮은 밀짚모자를 살짝 들어올려 보는 가을하늘은 지나치게 푸르르다.
딱히 할만한 일이 없어진 나는 아빠를 따라 나온 가을들판에서 하루가 다르게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거나 메뚜기와 바야흐로 월동준비에 바빠지기 시작하는 개구리를 좇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추수기가 오면 나도 낫을 들고 벼이삭들 사이를 누비리라고 아빠에게 우겨보기도 하지만 언제나 내가 듣는 대답은 아빠의 검붉게 탄 얼굴에 뜨는 미소뿐이다.
나는 아빠의 미소 뒤에 웅크리고 있는 고민 하나를 알고 있다.
농촌활동을 갔던 경기도 이천 어느 읍에서 열렸던 추곡수매가 동결 반대 집회에 참석해서 본 것들은 아빠와 같은 얼굴들이었다.
지금 그 얼굴 하나가 내 눈길 닿는 곳에서 벼이삭들을 둘러보고 있다.
풍요롭게 익어가는 가을들판은 이렇듯 상대적이다.
나는 지금 내 손가락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개구리를 본다.
이 개구리는 어딘지 모르게 이 가을들판과 닮아있다.
나는 개구리를 퇴색해가기 시작하는 무성한 풀숲 속으로 보내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의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아빠는 추수와 탈곡은 모두 기계로 하니까 내가 할 일이라고는 엄마와 같이 이삭줍는 일밖에 없다고 하신다.
농촌활동 간 농가에선 볏단도 날라봤다고 하려다가 그 얘기 뒤로 미소만 짓는 아빠 얼굴을 보며 나는 새삼 이삭줍기에 대한 상념에 빠져본다.

몇번 신문지를 갈아주는 사이에 아랫목의 단풍잎은 구겨짐없이 깨끗하게 말랐다. 바스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흰 종이 위에 얌전히 옮겨놓는다. 준비해둔 펜을 손에 쥐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 바짝 붙어앉는다. 잠시 눈 앞의 단풍잎을 내려다본다. 무언가 쓸 말이 하양없이 많다. 그렇지만 쉽게 펜을 대지 못한다. 기억 속에, 상념 속에 있던 것들을 형상화시킨다는 것에 뜻밖의 두려움이 인 것일까? 마냥 그렇게 눈 앞의 단풍잎만 내려다보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가을의 밤바람이 제법 싸늘하다. 어둠 속에 쭈볏쭈볏 서있는 이런저런 나무들을 본다. 나무는 내 이름이다. 나무와 같은 내 이름을 가진 내가 가을의 밤바람을 받으며 마당에 서있다. 잊고있던 담배가 생각난다. 하지만 이 바람으로도 족하다. 고향집에 돌아와 있던 그간의 시간들 속에서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새삼 바람이 좋아진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서 책상 앞에 앉는다. 아직도 일말의 두려움이 손끝에서 맴돈다. 하지만 이제 펜은 단풍잎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숨가쁘게 살아가며 문득 잊고 있던 소중한 작은 것들, 나 자신에게 변명하며 미루거나 포기해버린 수많은 의식과 실천들의 남은 아쉬움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의 웃는 얼굴들... 어쩌면 다음날 새벽 눈을 떠 처음 보이는 회색빛 역시 정겨워질지도.
가을밤이 깊은 여울 속으로 조용히 굽이치며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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