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다.
스스로를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그들은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까지 심하게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늘 아침 일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생은, ... 그 녀석은 그렇다 쳐도 어머니가 아버지나 나보다 더 잘난 것이 뭐가 있다고! 아니 나는 빼더라도 아버지보다 잘난 게 뭐가 있다고!
그 잘났다는 어머니한테 밥상머리에서 그렇게 면박을 당하시고 출근하시는 아버지께 동생 놈은 위로 한마디 해 주지 않았다. 싸가지 없는 새끼! 형한테 사사건건 대들고 무시하는 것까지는 봐줄 수 있어도 아버지한테까지 그러는 것은 참으로 두고 못 볼 일이었다.
학원을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면서, 어머니한테 말도 안되는 잔소리를 또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이 자식 오늘 집에만 들어와봐라하고 벼르고 있었다. 네녀석은 말야, 공부를 그리 잘한다는 녀석이 말야, 그렇게 싸가지가 없어도 되는 거야? 니가 이 형을 무시하는 건 봐줄 수 있단 말야, 근데 말야, 니가 아버지한테 뭐 잘해드린 거 있다고 그 따위로 대드냐고, 응? 니가 그러고도 아버지 아들이라 할 수 있어? 누가 보면 니가 아버지 애비쯤 되는 줄 알겠다. 공부 잘하는 새끼들은 다 그러냔 말야! 눈 내리 못 깔어? 형한테 맞아볼래?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등을 타고 서늘한 기분이 자르르 흐르는 것이다. 동생한테 얻어맞고 코피까지 터진 못난 형이, 자기보다 힘도 세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났고 무엇보다도 공부를 잘하고 콧대 높은 동생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챙긴 가방을 앞에 놓고 방바닥에 앉아, 그날, 학교 교실에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동생한테 면상을 보기 좋게 얻어맞고 코피가 터지던 고 3 때의 그 치욕스럽던 오후를 생각하며 가슴 속의 분을 삭이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니 학원 안 갈래?"
어머니가 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속으론 씨팔씨팔 욕을 해대며.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분을 못 삭이고 있던 나는 문득 이런 날이 오늘 아침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고... 어제도 이 시각에 여기 이 버스 정류장에서 이 생각을 했고, 그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고... 정말이지 이젠 질릴 때도 되었는데 이 지겨운 수레바퀴는 언제까지 돌 것인지... 짜증을 느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깊이 한 모금 빨아들이는데 정류장에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왼쪽으로 꺾으니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가 보였다. 오늘도 어제와 그제와 같은 만원버스다. 내일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방금 피워 문 담배를 봤다. 아까웠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는 급하게 한 모금 더 빨고는 그 긴 장초를 휙 집어던지며 사람들 틈에 섞었다. 버스가 정류장을 좀 지나 섰고 뒷문이 열리며 두어 명이 힘겹게 내리자 버스는 문을 닫고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뛰기 시작하는 사람들 틈에서 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에잇! 정말 재수 없는 날이군!
이웃이나 친척들은 우리 네 식구를 보면서, 나는 아버지를, 동생은 어머니를 꼭 빼어 닮았다고들 했다. 그 말들은 사실이었다. 흰머리가 이제는 관자놀이께에서부터 정수리로까지 번지는 아버지는 중소기업체의 만년 부장이고, 큰아들인 나는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재수생이고, 아직 흰머리 하나 없는 어머니는 좋은 입심과 탁월한 사교술로 여기저기 안 들쑤시는 데가 없이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돌아다니고, 동생은 학교에서 무슨 놈의 써클 회장이라는 지 캡틴이라는 지 하며 자잘한 똘마니들을 거느리고 위세도 당당하게 다니는 것이, 딱 두 명씩으로 구성된 두 개의 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두 파에 이름을 굳이 붙인다고 하면 우성파(優性派)와 열성파(劣性派)라고나 할까?
조용하고 착하기만 한 우리 아버지의 부하인 나는, 그러나 두 우성파의 구성원들이 우리 열성파를 구박할 때면 (실제로) 잘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어머니와 동생에게 꼬투리를 안 잡히려고 노력했고 대신 그들의 자잘한 꼬투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흠 잡힌다'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못난 사람들만의 특권인지 번번이 꼬투리를 잡히는 것은 내쪽이었고, 어머니와 동생은 자기들의 약점은 단단히 단도리한채 일방적인 공격만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한탄했다.
'이런 콩가루 집안이 또 어딨을까...'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우리 집안의 문제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수입과 그 출처가 도대체 불분명한 어머니의 수입은 우리 집을 적어도 중산층 가정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들었고, 큰아들인 나는 비록 한번 미역국을 먹었지만 우리나라 수험생들이 의례히 거치는 과정이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고, 작은아들이야 남들이 다 인정하는 우등생이니까 서울의 일류대 진학은 문제없을 것이고, 아버지는 조용하고 인자하며 가정적이고,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하고 집안살림 잘 꾸려나가니 무어 문제될 게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안으로의 부패는 더욱 번지르르해진 겉모양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집안에 떠다니는 묘한 공기는 내가 집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지를 풀 때도, TV 과외를 볼 때도 식구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도, 수시로 내 숨구멍을 탁탁 막아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선 서로 말을 나누질 않았고 동생은 동생대로 집안식구 누구와도 말을 않고 제방에 틀어박혀 혼자 제 할 일만 했다. 간혹 어머니가 동생의 방에 들어가 무슨 얘긴가를 할 뿐.
그런 놈의 집구석이 싫어서 나는 집중도 안되는 학원 수업이 끝나자 독서실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재석과 인화와 같이 학원 옆 당구장으로 직행했다.
당구대를 잡고 각자 큐대를 나누어들고 언제나처럼 재석은 장갑과 토시를, 인화는 줄을 찾아 카운터로 간 동안 나는 골라든 큐대에 쵸크칠을 하며 빨강과 하양이 번갈아 있는 점수판을 노려봤다. 기필코 오늘은 저 잘난 체 하는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놓으리라. 그러나 그 다짐도 잠시, 호기있게 친 내 공이 두 빨간 공 사이를 맵시있게 빠져나가자 나는 두 녀석의 눈치를 살피며 빨간 고리 9개를 왼쪽으로 밀어냈다.
"어... 너 왜 80이야!"
"뭐가?"
"이 새끼 또 사기다마 친다!"
"사기다마는 무슨 사기다마."
"너 100 올린 게 언젠지 다 아는데 왜 80만 놔?"
"내가 언제 100 올렸다고 그래?"
"점번에 나랑 칠 때는 100 놓고 쳤잖아!"
"다시 내렸다, 왜!"
"아... 내비둬, 80만 치다 죽으라고..."
따지고 드는 인화보다 그런 식으로 말하며 피식대는 재석의 얼굴이 더 보기 싫다. 나는 큐대를 들고 점수판 앞에서 잠시 그러고 있었다. 내가 처신을 어떻게 해야지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생각하며.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완전히 바보가 되어 따돌림당한다는 생각이 꼬물꼬물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고 그러자 기분이 팍 상해버려 나는 큐대를 소리나게 내려놨다.
"씨팔... 150 놓는 니들끼리 그래 잘 해먹어라!"
아직 불을 안 붙인 담배를 입에 물고 공을 치기 위해 당구대 위에 길게 엎드린 재석이 한마디 던졌다.
"새끼... 게임비 물기 싫으니까 빼는 거 봐."
나는 가방을 들고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그들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당구장을 나섰다. 개새끼들... 의리라고는 쥐뿔만치도 없는 놈들... 에라이, 그래 니들끼리 당구 많이많이 치고 잘 살아라! 계단 구석에 냅다 침을 뱉었다.
만화가게로, 전자 오락실로, 두 시간이나 이리저리 헤매며 난 가지고 있던 2000원을 다 써버렸고, 주머니 속의 학생 회수권을 만지작거리며 전자 오락실을 떠나야만 했다.
어느새 해가 떨어져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오락실과 만화가게 위 3층에 자리잡은 당구장의 환한 불빛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발걸음을 떼었다.
야간 강의를 들으려는 고등학생들이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있었고 친구들끼리 재잘대며 떠드는 그들의 얼굴에는 나는 절대로 재수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빛이 드러나 보였다. 교복을 입은 그들의 눈에 사복을 입고 전자 오락실에서 나오는 이 재수생의 몰골이 얼마나 한심스럽게 보였을까.
배가 고파왔지만 학원 앞의 포장마차에서 오뎅 국물 하나 먹을 돈이 없는 나는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정류장엔 사람이 많았다. 태반이 고등학생이었고 나와 비슷한 재수생의 몰골을 한 사람도 적잖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들 공부를 하다가 나온 듯 피곤에 젖은 눈이나마 매섭게 빛나보였다. 왠지 그들 사이에 있는 나 자신이 무슨 죄를 지은 것 마냥 느껴져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상가 쇼 윈도우에 바짝 붙어 섰다. 그렇게 환한 대형 유리벽 앞에 바짝 붙어 서서 나는 정류장 여기저기에 서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들을 가만히 노려봤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 적으로 보였다. 내가 밀쳐 떨어뜨리고 저만치 젖혀놓고 등짝을 찍어 쓰러뜨려 그 위를 밟고 지나야할 적들. 나는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한결같은 증오감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내가 쓰러뜨리고 쳐부수고 뒷통수를 쳐 다시는 못 일어나도록 만들 대상으로.
나는 그렇게 의도적인 적을 만들어야만 간신히 살아야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심각한 강박관념.
버스가 들어왔다. 사람들 몇이 버스를 따라 움직였다. 나는 주머니 속의 학생 회수권을 한 장 뜯어 손에 쥐고 버스 앞문을 쫓아 움직였다. 퇴근시간에 걸린 만원버스. 나는 아까 애써 빚어낸 증오심을 발휘하여 나의 적들을 치열하게 물리치며 버스 안으로 올랐다. 버스 운전기사 옆에 마련되어 있는 요금통에 학생 회수권을 넣고 뒤의 사람들에 밀리며 앞을 막고있는 사람들의 틈을 파고드는데 깨진 뚝배기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내 뒷덜미를 잡았다.
"이봐, 학생! 자네 고등학생 맞아?"
설마 나를 부르는 것이리랴. 나는 사람들의 틈을 파고드는 힘을 좀더 강하게 하여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인간의 벽에 구멍을 뚫고 뒤쪽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작은 희열을 느끼는 위로 깨진 뚝배기 두드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조 새끼, 조거, 재수생 같은데, 학생표 내네... 이거..."
그리고 부르릉 하며 엔진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몸을 와락 한쪽으로 몰아버리는 관성의 법칙. 어이구, 아야 하는 비명소리가 좁은 만원버스 안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며 사람들의 무리가 조금 버스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는 서슬에 조금 몸 움직이기가 편해지자 나는 머리맡에서 흔들거리는 손잡이를 잡고 발 디딜 자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새 완연한 밤이 도시를 덮쳐버렸다. 버스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은 모두 환한 전조등을 켜고, 길 양편으로는 형형색색의 간판과 네온사인들이 번쩍였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 위 손잡이를 꽉 쥔 채 창 밖을 노려보듯 내다보고 있었다. 불을 밝혀놓은 버스 안의 정경이 검은 유리창에 비추어져 해골 같은 형상의 내 얼굴이 나를 노려보고 있은 것이 보였다. 나는 그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눈을 힘껏 쏘아봤다. 어쭈? 맞쏘아봐? 좋아.
버스가 환한 밤거리를 내질러 가는 동안 나는 그렇게 유리창에 비친 나 자신과의 눈싸움에 여념이 없었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려야 할 데가 바로 다음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벨을 누르고 한산해진 사람들의 숲을 비껴 뒷문 앞에 섰다. 버스가 서면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간 바로 돌아오는 사이에 뒷문이 열리고 버스가 갈라대던 공기가 흘러들었다. 어두운 밤공기. 버스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 앞으로 달려나가고 나는 사람이 드문드문한 신호등 아래 섰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는구나. 고단한 재수생의 삶. 나는 길 건너편, 파란 신호만을 기다리며 선 몇 사람을 건너봤다. 그 사람 가운데 어둠 속에서도 탁 눈에 뜨이는 이쁘장한 여학생 하나. 아마도 여대생이리라. 가방을 메고 두 손으로는 파일뭉치를 들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삶을 파고들고 싶어졌다. 어릴 적엔 어떻게 자랐으며, 고등학교 때는 어떻게 공부를 했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고, 지금은 어떻게 대학생활을 하는지, 등등등. 내가 만약 그녀의 삶을 살았다면, 아니면 그녀가 나의 삶을 살았다면, 서로는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을 것인가. 만약 그녀도 나와 같은 척박한 삶을 산다면, 과연 아무런 문제없이, 원만하게, 즐거운 대학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까.
세상에 가득한 별의별 것들 사이에서 역시 그렇게 희한한 삶의 모습을 갖지는 않을까. 겉으로는 저렇게 멀쩡한 여대생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혹 속으로는 정말로 뭔가 좀 별나고 특이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등등등.
그녀가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섰다.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떼어 도로로 내렸다. 파란불이었다. 나는 그녀를 비스듬히 쳐다보며 걸었다. 그리고 거의 의도적으로 그녀의 바로 옆을 스치듯이 지나쳤다. 어두운 밤공기에 희미한 화장품 냄새가 실려왔다.
길을 다 건너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정류장을 지나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환한 밤거리의 불빛 속으로, 그 속의 사람들 속으로. 나는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를 흘끔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갑자기 밀어닥치는 공허함에 몸을 떨었다. 빌어먹을...
집에 들어가기가 무진장 싫었다. 시계는 9시가 다 되어감을 알리고 있었고 나는 될 수만 있으면 외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어머니의 서슬이 퍼렇고 무서울지라도. 빌어먹을 놈의 집구석.
겉으로만 평화로와 보이는 내면의 개판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더구나 그 개판에서 불행한 역만을 맡아서 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더더욱.
나는 대문 앞에 서서 환하게 밝은 거실의 유리창을 노려봤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밖에까지 들려나오는 어머니의 잔소리들까지도 눈에 있는 힘껏 힘을 모아 노려봤다. 당장에 발을 돌려 이놈의 집구석에서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만, 그러나... 나에겐 이곳 말고는 잠 잘 곳이 없었다. 잘난 친구들 누구도 이 불쌍한 영혼을 거두어 재워주고 아침을 먹여줄만큼 너그럽고 어질지 못했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그랬다. 때문에 나는 마치 집에서 쫓겨난 애마냥 대문간을 뜨지도 못한 채 앞에서 서성거리고만 있는 밖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젠장...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 피워무는데 대문이 찰캉하며 열리더니 동생놈의 머리통이 비주룩이 밖을 내다봤다.
"형, 뭐해?"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녀석의 목소리. 갑자기 오늘 아침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후려치고 지나갔다.
"담배 핀다."
녀석은 묘한 눈초리로 나를 흘겨보면서 대문 사이로 사라졌다. 개새끼!
허연 담배연기가 어두운 하늘 속으로 자꾸자꾸 녹아들고 있었다. 하늘은 어둡게 흐려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놈의 세상에서 별을 본다는 것은 이미 의미를 상실하다 못해 쓰잘데기 없는 짓이 되어버렸으니까.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자꾸자꾸 담배연기만 피워올렸다. 어느 집에선가 개가 짖고 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해?"
밤의 적막한 공기와 개의 짖는 소리까지도 날카롭게 찢는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며 피우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저 새끼가? 담배까지 펴? 너 빨랑 들어와!"
이런, 씨팔!
눈앞이 아득했다. 젠장, 담배 피우는 것도 잘못 축에 든단 말야? 친구 놈들은 이미 고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다들 담배 피우고 제 방에 재떨이 하나씩 가져다 두고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때까지도 담배를 피운다고 어머니한테 죽을 각오를 해야한다니. 제기랄!
나는 동생이 열어놓은 대문으로 들어간 다음 대문을 힘껏 닫았다. 쾅! 하는 육중한 쇳소리가 밤의 적막함을 한 번 더 흔들어놨다.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가 앞에 떡하니 팔짱까지 끼우고 버티고 서 있었다.
"너, 담배하고 라이타 내놔!"
"왜 그래요. 이제 담배 정도는 피울 나이라고요."
나는 신발을 벗고 어머니 옆을 피해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그러나 여지없이 어머니의 어깨에 걸리고 말았다.
"이 새끼가? 빨리 안 내놔?"
나는 어깨에 멨던 가방을 바닥에 팽개쳤다.
"정말 왜 그래요--. 가져가서 엄마가 필 거예요?"
"뭐어?"
하는 소리가 끝을 채 감추기도 전에 어머니의 손바닥이 내 뺨으로 날아왔다. 눈에 불이 번쩍했다. 순간적으로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러나 금방 힘이 풀리고 말았다. 어쩔 것인가. 어머니를 상대로 쌈판 한판 벌여볼 셈이라도 되나? 제기랄. 이 나이까지 어머니한테 맞고 담배를 빼앗기며 산다니.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어머니의 펼친 손바닥 위에 탁 하고 내려놨다. 그리고 일그러뜨린 눈을 치떠 어머니의 눈을 정면으로 쏘아봤다.
"됐어요?"
"너 지금 엄마랑 한판 붙자는 거야?"
"아녜요."
나는 팽개친 가방을 들고 발을 구르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문이 부서져라 닫고 손잡이의 조그만 자물쇠를 채웠다.
"씨팔!"
나는 그대로 문을 뒤에 지고 서서 분을 삭이려 노력했다. 문 건너편으로 아버지의 초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애 들어왔어?"
"조 자식이 벌써부터 담배를 배웠어요. 당신은 입때까지 애 저런 것도 간수 않고 뭐했어요?"
또다시 시작되는 잔소리.
"사내자식이 담배 피울 수도 있는 거지."
"당신이 맨날 그렇게 담배를 피워대니 애가 배우죠!"
"그애 담배 피우는 게 내 잘못이야?"
"당신 잘못 아니면?"
"당신이 그애 엄마잖아."
"쟤는 당신 아들 아니우!"
"나 혼자 낳았나?"
"이그... 하여튼 지 아버지는 그대로 빼다 박아갖곤..."
문을 통해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묘한 여운이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빼다 박은 게 뭐 이상한 일인지. 당연한 그 말은 오히려 아버지의 흠잡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밥 먹었어?"
문 바로 뒤에서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흠칫 놀랐다. 문고리가 철컥철컥 흔들렸다.
"문 잠궈놓고 뭐해! 사내새끼가 엄마한테 한 대 맞고 삐졌어?"
"됐어요!"
나는 문을 떠나 가방을 들고 책상 앞으로 갔다.
"밥 안 먹을 거야!"
"생각 없어요!"
"나중에 배고프다고 하기만 해봐라, 그냥!"
씨팔...
나는 가방을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팽개치듯 던지고 의자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사실 배는 고팠다. 하지만 이런 집안에 있으면서 식욕이 생긴다는 것은 이상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는 책상에 팔꿈치를 괴고 앞을 똑바로 쳐다봤다. 눈앞 책꽂이에 빼곡이 꽂힌 각종 참고서, 문제집, 참고서, 문제집. 그 많은 참고서와 문제집 가운데 절반 가량은 아직 펴보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빌어먹을... 이제 시험까지는 몇 달 안 남은 터였다. 겨우 넉달 정도. 이번에 또 떨어진다면 나는 기필코 집에서 쫓겨나고 말리라. 집에서 쫓겨남은 희비가 엇갈리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눈앞에서 안 봐도 된다는 기쁨이 있지만, 우선 먹고 자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말로만 듣던 서울역 지하철의 노숙자들을 떠올렸다. 신문지를 깔고 누운 다음 그 위에 신문지를 덮고, 모로 누워 잠을 청한다는 그들. 한둘도 아니고 수명이 지하철 역 여기저기서 제각각 누워 잠을 자는 모습. 그 가운데에 내가 낀다면? 갑자기 몸이 간지러워졌다. 젠장, 폐차장은 어떨까? 폐차 직전의 버스 안에서 먹고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러나 겨울에는 아무래도 지하철보다 더 추울 것 같았다. 차라리 직업거지로 나서는 것도 좋을 듯. 신문지를 덮고 자면 따뜻하다는 말도 생각이 나고.
제기랄...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와 동생에 대한 나의 완벽한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난 대학을 들어가야만 해. 그래야 어머니한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말을 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래봤자 동생이 더 좋은 대학 들어갈텐데... 그럼 난 다시 시궁창에 처박힌 죽은 쥐 꼴이 될테지... 빌어먹을!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구석에 팽개쳐놓은 가방을 집어들었다. 가방 안에 있는 성문 기본영어, 수학정석, 그리고 학원에서 나눠준 프린트물 등. 이것들을 꺼내 책상 위에 죽 늘어놓고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공부가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건성으로 성문기본영어의 책장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문 밖에서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고함을?
나는 문으로 달려가 바짝 귀를 붙이고 밖의 소리를 엿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우고 있었다.
이런... 지구가 멸망하려나? 나는 이제껏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저렇게 소리지르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웬일이시지? 나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지르는 소리의 내용을 알기 위해 문에 귀를 더욱 바짝 붙였다. 이런, 맙소사! 아버지가 지금 어머니에게 윽박지르는 말의 내용은 바로 나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대입에서 떨어진 것, 그리고 재수를 하면서도 성적이 그닥 오르지 않는 것 등. 그러니까 아버지는 지금 그런 것들이 아버지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어머니에게 강하게 항변하는 중인 것이다. 젠장, 내가 아버지 어머니의 부부싸움의 도마 위에 오르다니.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모든 불화의 씨가 다 내 탓인 듯. 생각 같아서는 뛰쳐나가 아버지 어머니 앞에 서서 그만 하시라고, 나 같은 것 땜에 싸우지들 마시라고, 내가 없어지면 되지 않느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에게 그럴만한 용기가 없음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무척이나 참담한 심정이 되어 의자에 다시 가 앉았다. 싸움은 계속 되고 있었다. 성문기본영어를 뒤적이는데도 신경은 온통 문밖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에 쏠려있었다. 이제는 무턱대고 서로를 헐뜯는 말들. 아버지도 저런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쓸 때가 있었나? 다소 아버지에 대해 실망했다. 아버지는 그저 침착하고 차분하며 논리적이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참담함이 증폭됐다.
쾅!
이런 젠장!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뒤따르는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
"어디 가요! 이 시간에!"
"조용히 해! 어딜 가건 내 맘이야!"
거세게 현관문 닫히는 소리. 그리고 잠시 정적.
나는 두 귀를 문밖으로 쫑긋 세우고 신경을 모았다. 갑자기 내 방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너무 놀라 억, 하고 낮은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 뭐해! 문 안 열어!"
나는 대꾸를 안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도 몰랐고, 어떻게 말을 해야하는 지도 잊어먹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책상에 두 팔꿈치를 괴고 두 눈을 휘둥그래 떠 문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문 안 열어! 디비져 자냐! 으이그, 이 웬수야!"
동생 방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왜 그래. 동네 창피하게."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냐! 두 남자가 내 속을 긁어놓으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아버지와 나는 주워온 식구인 듯 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원래부터의 이 집주인이고. 빌어먹을!
"너 빨리 나가서 아버지 안 데려와!"
다시 방문을 뚫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날카로운 외침.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다시 부모님들 사이를 풀고 '정상적인' 집안을 만들 수 있는지는 전혀 머리 속에 없었다. 단지 의자처럼 높은 곳에 앉아있으면 어머니의 눈에 더 빨리 뜨일 것이라는, 그래서 잘 보이지 않도록 구석으로 숨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됐어, 엄마. 내가 나가서 모셔올게."
동생의 낮은 목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신경질적인 외마디 욕설.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갔는지 조용해졌고 이윽고 TV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로 그저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모든 인간적인 사고활동을 박탈당한 채, 그렇게 마치 한 마리의 벌레처럼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구석에 앉아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존재해야할 필요성. 세상에서 하나의 개체로 태어났으면 무엇인가 그에 맞는 역할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역할에 충실할 때 그 개체는 비로소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내가 쭈그리고 앉아서 쳐다보는 방바닥 위로 무언가 시커먼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내 눈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쫓았다. 그것은 빠르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딱 멈춰섰다. 내 눈도 그것을 따라 멈췄다.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 그것. 그것은 바퀴벌레였다. 바퀴벌레는 그렇게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간 다시 빠르게 움직이더니 장판과 벽이 만나는 선을 따라 쭉 움직여 방문까지 가다가 문지방과 방문의 좁은 틈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내 눈은 그것이 사라진 방문 틈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벌레이지만 가장 생명력이 질긴 벌레라고 하던가, 바퀴벌레가.
문득 나는 내 몸에서 뭔가 길고 끈적이는 것이 빠져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어깨에서, 옆구리에서, 골반 뼈의 옆에서. 까맣고 길게 빠져나온 그것은 기름기로 번들거렸고 허공에서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에서도 뭔가 길고 가느다란 실같은 것이 두 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내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면서 주위의 공기를 살폈다. 나는 그 두 개의 더듬이로 주위를 충분히 살필 수 있었다.
화석화한 내 작은 방. 그 방안의 살아있지 않은 모든 물체들. 그리고 살아있는 것들. 그것은 나와 처지가 같은 바퀴벌레였다. 질긴 생명력으로 자기를 죽이려는 모든 것들을 피해다니면서 끝까지 목숨을 이어나가고 있는 작고 까만 바퀴벌레들. 그들은 지금 어머니가 TV를 보고 있는 안방으로 줄줄이 무리 지어 몰려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까맣고 길고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여섯 개의 다리와 두 개의 더듬이를 바삐 놀리며 그들의 긴 대열 속으로 끼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