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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또는 내가 사는 악몽에 대하여] 이야기 소묘 - 2006년 03월 09일 14시 41분
2006년 03월 09일 14시 41분 2006년 03월 09일 14시 41분
방 한구석에 구겨지듯 쳐박혀 앉아있는 내 무릎으로 검은 물체 하나가 날아와 앉는다.
꼭 내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바퀴벌레이다. 녀석은 내 무릎 위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있다. 나는 푸른 트레이닝 바지 위로 까맣게 도드라지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죽은 듯 꼼짝 않던 녀석이 더듬이를 하늘거리며 움직인다. 하늘거리는 녀석의 더듬이를 향해 나는 가벼운 입김을 불어보내준다. 조용한 봄날의 미풍처럼. 녀석의 더듬이가 바람에 실린다.
방 안은 어둡다.
일요일 한낮의 이 방 안은 지각을 뚫고 깊이 침잠하고 낮게 뜬 겨울의 태양은 잿빛 장판에 밝은 네모를 그려놓고 있다. 밝은 네모는 황도를 따라 조금씩 장판 위를 핥는다. 장판 위엔 먼지가 분처럼 깔려있다. 나는 밝은 네모가 장판 위를 핥으며 내는 소리를 듣는다. 먼지가 밝은 네모 주위로 뭉글거리는 연기를 만들어낸다. 밝은 네모가 뿜어내는 빛을 받아 환하게 반짝인다. 내 의식은 지나가는 풍경에서 갑자기 멀찍이 물러나온다.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방구석은 한발짝 더 어둠 속으로 물러선다.
바퀴벌레는 어둠을 감지한 듯 몸을 움찔한다. 하늘거리는 녀석의 더듬이가 바빠진다.
나는 일어선다.
일어서는 서슬에 놀란 녀석이 몸을 한 번 뒤채며 날개를 편다. 날개를 편 녀석이 밝은 네모 위를 지나는 순간 녀석의 번들거리는 몸에서 밝은 빛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빛줄기는 사방에 서있는 벽에 가 부딪쳐 박힌다. 콘크리트 벽에서 떨어져나온 조각들이 튄다.
녀석은 어느 순간엔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없다. 밝은 네모 건너편 장판 위에 녀석의 것인듯한 희미한 자취가 남아있다. 나는 잠시 녀석이 사라진 경로를 추적해본다. 하지만 찾을 수는 없다. 녀석은 아주 빠르게 이 방 안을 탈출해 버렸다, 그렇게 믿는 편이 속 편하다.
내 눈은 장판 위를 떠나 벽으로 올라온다. 벽에는 구멍들이 나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들락거릴 만한 구멍들이 콘크리트 벽을 파고 무수히 나있다. 그 구멍들 속에는 꼭 그만큼만한 애벌레들이 꿈틀대고 있다. 하얀 애벌레들은 계속 자라난다. 자라면서 자기를 감싼 공간이 좁아지면 벽을 갉아먹어간다. 그러면서 끝없이 자라난다.
나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벽 갉는 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 서있다. 그러면서 짤막한 생각에 빠진다. 어차피 이 방은, 이 방을 포함한 이 집은 얼마 못가 무너지리라는 것을 배워나간다. 나는 이 방을 나가기로 한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 맞은편 벽에는 문이 하나 있다. 나는 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가다가 밝은 네모 앞에 이르러 나는 멈칫한다. 이 네모에 발을 디뎠다간 안으로 한없이 빠져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더 이상 앞으로 가질 못한다.
밝은 네모는 여전히 환한 먼지를 양옆으로 피워올리며 장판을 핥고 있다. 밝은 네모가 장판을 핥아나가는 속도는 무시무시하다. 나는 섬뜩함을 느끼며 한발 뒤로 물러서고는 내가 앉아있던 방구석을 쳐다본다. 내가 등을 대고 있던 벽에 나있는 구멍에 애벌레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애벌레의 허연 눈을 쳐다본다. 애벌레의 눈은 나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애벌레의 눈이 무척이나 슬퍼보인다. 애벌레는 고개를 한 번 젓고는 다시 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벽 갉는 소리가 들려온다. 구멍 안에서 꿈틀대는 애벌레의 허연 몸이 살짝 눈을 스친다.
나는 다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밝은 네모와 마주하고 선다. 그러나 이미 낮게 뜬 겨울의 태양은 땅밑으로 지고 등 뒤에서 어둠이 빠르게 달려들고 있다. 어둠은 방 안을 훑어나가고 애벌레들의 구멍에선 피가 흘러내린다. 나는 문을 열고 집을 나온다.
사방은 어둠 속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등 뒤에서 집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무너져내린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집이 무너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바깥 세상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낮은 울음 소리가 어둠 밑으로 가라앉아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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